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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변화의 길목에서 에코뮤지엄을 말하다: 完. 한국형 에코뮤지엄의 미래, 전문가 제언

제목 [뉴스]변화의 길목에서 에코뮤지엄을 말하다: 完. 한국형 에코뮤지엄의 미래, 전문가 제언
작성자 정서정 날짜 2021-04-16 18:36:16
‘에코뮤지엄’은 1970년대 프랑스에서 태동했다.
1971년에 열린 세계박물관협의회(ICOM)에서 프랑스환경부 장관인 푸자드(Robert Poujade)가 수많은 박물관학자들에게 생태와 박물관의 통합적인 개념에 대한 촉구를 당부하는 연설이 단초를 제공한다.
이에 반응한 조르주 앙리 리비에르(George Henri Riviere)는 지역의 다양한 환경자원과 공동체의 지역유산들을 ‘자연공원’화하는 콘셉트에 대한 용어로 ‘Eco Museum’을 명명하기에 이른다.
프랑스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해체되어가는 공동체와 그로인해 부지불식간에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가까운 과거의 문화유산을 유지·보존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에코뮤지엄으로 풀어가고자 했다.

주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에코뮤지엄’운동은 공동체문화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방법론으로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스웨덴과 이탈리아, 영국으로 옮겨간 에코뮤지엄은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변화되어 나름의 가치체계를 형성했다.
인류가 지난 수세기동안 수많은 발견을 통해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빠른 속도에 현혹되어 공동체를 둘러싼 문화유산을 각고 없이 폐기하고 놓쳐버린 것에 대한 반동작용으로 에코뮤지엄이 등장했으리라.
에코뮤지엄은 유럽을 넘어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지역 일본으로 상륙한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로 편중된 삶의 패턴의 변화는 일본 공동체의 해체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본의 에코뮤지엄은 1990년대 중반부터 문화유산을 유지·보존하는 방법론으로 적극 도입되었다. 현재까지 ‘환경박물관’, ‘살아있는 박물관’, ‘마을 통째로 박물관’ 등 나름의 개념화를 거치며 비교적 많은 연구가 진행된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도 2000년대 초반부터 에코뮤지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강원도 영월군은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명명하며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들을 관내로 흡수했다. 학생들이 떠나버린 폐분교를 활용하거나 폐산업시설인 탄광을 박물관으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국내에서 시도되는 ‘야외박물관’혹은 ‘오픈에어뮤지엄’의 선험적인 사례로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의 주체적인 참여가 최우선이자 필수요소로 작용하는 에코뮤지엄의 개념성립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 밖에 지역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시도되었다. ‘마을만들기’, ‘예술마을가꾸기’ 등 다양한 이름의 공공예술사업이 진행되었고, 기능성을 잃어버린 폐산업시설들이 문화시설로 전환되는 장소재생사업도 뒤를 이었다.

공공예술사업의 경우 정부주도 하에 전문가·예술가 그룹이 참여해 정해진 구역의 환경개선과 더불어 벽화·조각 등을 설치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정작 지역공동체는 단순노동에 참여하거나 일회성 프로그램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에코뮤지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실제로 자금지원이 끊기고 전문가가 빠져나간 장소들은 흉물로 전락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했다. 지역기반의 문화콘텐츠를 관광자원화하는데 성공한 사례라 할지라도 무분별한 공공화로 인해 각종 소음발생과 난동, 오물투척 등 각종 사고를 불러왔다. 결국,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주민의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개발의 논리만으로 더 이상 우리의 미래가 낙관적일 수 없다는 지점에서 시도된 다양한 사례들은 대부분 지역의 주체인 공동체의 부재로 인해 온전한 성공을 이룰 수 없었다. 지역문화의 주체인 공동체가 스스로 행동하고 자신의 문화유산을 유지·보존하는 것만이 가장 이상적인 지역재생임을 방증한다.
이런 지점에서 에코뮤지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행정당국과 정책입안자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에코뮤지엄은 기존에 진행되어온 다양한 지역재생, 지역발전의 새로운 이름쯤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존의 지역재생은 유행처럼 예술가를 투입해 환경을 미화하고 조경적인 우수성을 높여 많은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게끔 만드는 지역관광사업으로 실행되었다. 천편일률적인 벽화와 조형물 설치 등의 환경미화 사업은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으며, 설령 성공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부동산 가치의 상승과 대부분 카페나 소매점의 투입으로 정작 지역을 토대로 살아온 지역주민은 떠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야기했다.
어떤 지역공동체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면, 안타깝게도 에코뮤지엄으로서의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현주민들이 떠나고 빈자리를 상업인구가 대처하며 지역의 문화유산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환되는 순간, 남아있는 지역공동체에게 과도한 애향심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문화유산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다.

에코뮤지엄이 멀리 프랑스에서 넘어온 방법론이고 가까운 일본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국내의 상황에 곧바로 적용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제는 유럽과 전혀 다른 조건들이다.
이미 우리의 유·무형의 문화유산들은 상당수가 개발논리에 의해 파괴되었고, 도시로의 과밀화는 농어촌 공동체를 급속도로 늙고 병들게 만들었다.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잉여생산물이 늘어나고 삶은 편리해졌지만 너무도 빠르게 전통적인 방식을 폐기해 버렸다
만약 지금 생존해있는 소수의 고령층이 사라지면 전통문화와 기술들은 기억 속에만 존재할지 모른다. 이 같은 공동체 문화를 환자에 비교하면 막 ‘골든타임’을 놓치기 직전의 응급환자일 것이다. 그렇기에 에코뮤지엄을 통한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유지가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 에코뮤지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비교적 공동체가 훼손되지 않는 지역을 찾아야한다. 기존의 지역재생 방법처럼 대상지의 특성이나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외부적인 요인들을 유입시킨다면 똑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대상지 선택과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지역에 동일한 에코뮤지엄을 도입한다면 예산낭비, 행정력 낭비만 될 뿐이다. 기본적으로 마을단위의 공동체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곳을 찾아내 스스로가 주체로 설 수 있는 훈련과 교육을 진행해야한다. 두 번째로 전문가의 역할이 정의되어야 한다.
전문가는 공동체가 스스로의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전문가가 주도하고 공동체가 따라간다면 금세 흥미를 잃고 좌초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전문가의 역할은 주민들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참여관찰하여 그들이 생각하기에 하찮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일상 속에서 유의미한 ‘문화’를 발견해내는 일이다. 그로인해 그 지역공동체만이 갖는 문화의 원형을 발견하고 유지·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지역공동체는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야한다. 자율의지를 통해 문화유산을 지켜나가며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는 소명과 신념이 필요하다.
이러한 토대아래 상업적인 성공도 예측해 볼 수 있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제적인 이윤을 제쳐놓은 에코뮤지엄은 설득력이 약하다. 균형 잡힌 계획 하에 파생되는 부의 창출은 에코뮤지엄의 미래를 밝힐 파란 신호등이다.
물론 이 때 경제적 이익은 양날의 검이다. 자칫 이익 분배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공동체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그로인한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에 핵심은 ‘균형’이다. 좌우상하가 일정하게 발달하는 가운데 지역문화의 관광상품화 전략이 시도될 때 에코뮤지엄의 안착이 가능하다.
각 마을마다, 공동체마다 특질적인 그들만의 에코뮤지엄 기본 자산이 존재한다. 다른 지역의 성공사례를 탐닉하고 따라가며 일률적으로 구조화하는 과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공동체가 스스로 사유하고 주체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경기일보의 첫 번째 기획보도에서 알렉산드르 뒤라지 프랑스에코뮤지엄 협회장이 말한 “에코뮤지엄은 철학이다”처럼 에코뮤지엄은 공동체에서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다. 때문에 에코뮤지엄은 반드시 가능해야만 한다.

출처 : 경기일보(http://www.kyeonggi.com) / 2016.11.2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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